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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의 다른이야기:인물탐구] 파블로 피카소:예술을 사랑한 남자, 입체주의, 청색시대, 장미빛시대, 아비뇽의 처녀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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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의 다른이야기:인물탐구] 파블로 피카소:예술을 사랑한 남자, 입체주의, 청색시대, 장미빛시대, 아비뇽의 처녀들

데리만주 2023. 12. 30. 14:43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Pablo Diego José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María de los Remedios Cipriano de la Santísima Trinidad Ruiz y Picasso)

피카소는 큐비즘의 창시자로서, 그의 작품은 형태와 색채의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신고전주의 등 다양한 미술사조에 속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발전시켰고,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 도자기, 판화, 시, 희곡 등 다방면으로 예술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뿐만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기도하여 미술을 바로보는 시각을 변화시킨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황소머리(1943), 파리 국립 피카소미술관

피카소의 삶과 작품

파블로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 교사였으며, 피카소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학교에서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프라도 미술관에서 명화를 감상하고 모방하였고, 1900년에 파리로 가게되면서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구가 되었다.

청색시대

 

피카소의 청색시대는 1901년부터 1904년까지를 일컫는데, 이 시기에 피카소는 주로 짙은 파란색이나 청록색의 색조를 띤 그림을 그렸다. 그는 스페인에서 영감을 받아 사회의 저층민들과 고독한 인간들의 모습을 표현했으며, 그의 친구 카사게마스의 자살에도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장미빛시대

 

1904년부터 1906년까지는 장밋빛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에  피카소는 주로 밝고 선명한 색채와 행복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렸다. 파리의 곡마단과 서커스의 연예인들을 소재로 삼았으며, 그의 첫 연인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모델로 사용했다. 이 시기에 인상주의와 분할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큐비즘으로의 전환을 준비했다.

아비뇽의 처녀들(1907), 뉴욕현대미술관

 

1907년에는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작품을 그렸으며, 이 작품은 형태와 공간의 왜곡과 분할로 인상주의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 작품은 큐비즘의 시작으로 간주되며, 피카소는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큐비즘을 발전시켰습니다. 1912년에는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세 사람의 음악가>가 있습니다. 1917년에는 발레 러스의 의뢰로 러시아에 갔으며, 그곳에서 발레 무용수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했습니다. 그는 이후에 신고전주의의 작품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쉬는 여인>이 있습니다. 1927년에는 17살 연하의 마리 테레즈 발테르와 만나면서 초현실주의의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게르니카(1937), 소피아미술관

 

1935년에는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1937년에는 스페인 내전에서 나치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학살당한 게르니카의 참상을 그린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1944년에는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51년에는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학살을 비판한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한국에서의 학살(1951), 파리 국립 피카소미술관

 

피카소는 삶과 예술에 여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7명의 여인들과 결혼이나 동거를 했고, 그들은 그의 예술적 영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1. 페르낭드 올리비에: 피카소의 첫사랑이자 모델로, 입체주의와 장미빛 시대의 작품에 등장한다.

2. 에바 구엘: 페르낭드의 친구였던 여인으로, 피카소의 작품에 '나는 에바를 사랑해’라는 글씨를 써넣을 만큼 사랑했다. 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3. 올가 코클로바: 러시아 발레단의 무용수로, 피카소와 결혼하여 아들 파울로를 낳았다. 고전주의의 작품에 나온다.

4. 마리 테레즈 발터: 17세의 소녀로, 피카소와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사랑을 나눴다. 딸 마야를 낳았고, 초현실주의의 작품에 '잠자는 여인’이나 '꿈꾸는 여인’으로 표현된다.

5. 도라 마르: 사진작가이자 시인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시대를 함께했다. 그의 작품에서 '우는 여인’으로 나온다.

6. 프랑수아즈 질로: 법대를 졸업하고 화가로 활동하던 여인으로, 피카소와 헤어진 후 그와의 삶을 폭로한 책을 썼다.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았다.

7. 자클린 로크: 피카소가 80세 때 만난 마지막 여인으로, 그와 결혼하여 20년간 함께했다. 피카소의 사망 후 자살한다.

피카소의 대표작

  • Les Demoiselles d’Avignon(1907): 피카소가 25세 때 그린 작품으로,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파리의 적색거리 아비뇽 거리의 매춘부들을 표현한 것으로, 형태와 공간의 왜곡과 분할로 인상주의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폴 세잔, 이브리아미술, 아프리카 조각 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큐비즘의 시작으로 간주되며, 현대 미술의 탄생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 Guernica(1937):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에서 나치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학살당한 게르니카의 참상을 그린 것으로, 피카소의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흑백의 색채와 큐비즘적인 형태를 사용하여,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세계적인 반전의 상징으로 인식됩니다.
  • Tete de taureau(1943): 피카소가 길거리에 버려진 자전거를 발견했다. 피카소는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을 떼어내고 안장 위에 핸들을 거꾸로 붙이고 ‘황소 머리’라는 이름의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예술성과 독창성이 잘 드러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 Massacre in Korea(1951): 파리의 국립 피카소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학살을 비판한 것으로, <게르니카>와 비슷한 구성과 색채를 사용하여, 전쟁의 잔인함과 무의미함을 표현했습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과 <키온의 니케>를 참고했습니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공산주의적인 사상을 담고 있으며, 미국의 반감을 사기도 했습니다.